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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 하는 이야기

출산/육아, 그 대장정에 대하여.

미세먼지 가득한 무더운 여름 같은 날씨였던 일요일 밤.

 

결혼 전이었다면 점심 먹고 누워서 쉴 때 즈음 월요병이 도져서 침울했겠지만,

4살, 2살인 두 딸을 키우는 나에게는 그런 게 없어진 지 오래다.

주말이면 아이들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오전, 오후로 하루에 2번씩 외출을 하고

끼니마다 밥을 챙기고, 아이들이 자고나면 난리가 난 집 구석구석을 정리한다.

건조기와 건조대의 빨래를 걷어 개고, 싱크대의 잔해를 처리하며, 욕실을 원래 모습으로

되돌려 놓는다. 마지막으론 내일 출근길에 가지고 나갈 쓰레기를 정리해 놓는다.

 

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무슨 싱글대디인줄로 오해할 수 있지만, 내 옆에는 항상

같이 육아로 발버둥 치고있는 와이프가 있다. 마치 내가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지만,

와이프는 나보다 육아에 관련된 훠어어어어얼씬 많은 일들을 고맙게도 매일매일 해내고 있다. 

 

아이가 생기고 키워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수많은 버거운 일들이

이 "육아"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. 

가끔은 진짜 말그대로의 독박육아로 다자녀를 키워온 우리 어머니 세대들을 생각해보면

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....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. 물론 육아에 대한

범위 자체를 현재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, 그래도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.

 

그래서 엄마에게 물었었다.

"아니 엄마. 형이랑 나랑 말도 드럽게 안 들었는데, 혼자 어떻게 키웠대?"

엄마가 욕으로 답했다. 정말 힘드셨구나....

 

내 주위에 현재 아이를 키우거나 거의 다 키운 선후배들을 보면, 이런 생각이 든다.

'아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이걸 해내고 있지?'

'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회사일은 왜 그ㄸ ㅏㄱ..... 크흠'

 

아빠 노릇이 처음이다 보니, 다른 아이들의 아빠들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

현실적인 피로 사이에서 항상 줄타기를 했다. TV에 매일같이 틀면 나오는

돈도 잘 버는 육아만랩 수퍼대디들과 내 현실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이라는

가시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, 그 가시를 단단히 해서 회사에 가져가곤 했다.

꼬라지가 말이 아니었지...

 

이래저래 암울한 육아 극초기를 지나, 이제 첫째가 이쁜 짓과 미친 짓을 약 65:35 정도로

교묘하게 섞어서 하는 4살이 되었다. 그 사이 둘째가 생기고, 불가능할 것 같던 둘째 육아도

이제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. 

아직도 힘들다. 농담 아니고 진짜. 레알.

퇴근하면 나도 좀 눕고 싶고, 친구들 만나서 술도 먹고 싶고, 시간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거

해보고 싶고, 내 연차를 내가 쉴 수 있는 날 내보고 싶고.



그런데 뭐하러 애 낳아서 키우냐고?  

 

모르겠다.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낳아서 이 쌩고생을 하는지 진심으로 모르겠다.

근데 낳고 보니 그냥 머릿속에 당연히 낳았어야 하는 일로 되어 있다.

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. 다만, 어린아이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

내가, 첫째 출산을 결정할 때 어떤 기대를 갖고 그 거대한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.

 

나와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지금 출산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면 해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.

건방지게 남의 결혼생활에 애를 낳아라, 말아라 할 생각은 1도 없다.

단지 내 개인적인 상황에서의 경험이 나와 비슷한 성향의 다른 누군가에게 참고가 되었으면 

한다.

아이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내가 느끼지 못하고 살던 감정들이 생긴다. 이게 부성애 같은 뭐

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, 아무튼 내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내 부모님이나 친구, 형제들이 알던

내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.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

감정들과 바뀐 내 모습, 이게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다.

애초에 전혀 모르는 영역으로 묻혀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,

내가 지금 겪는 이것들을 평생 모르고 살다 죽는다면 좀 억울할 것 같다.

애들 재롱떨고 이뻐 죽고 뭐 그런 건 TV에서 많이 보여주니까 굳이 내가 얘기 안 해도 될 테고.

 

그! 리! 고!

부모님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조금 상승한다. 앞으로 얼마나 더 상승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

내가 내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달라졌다. 이전보다 연민이 더 생겼다고 해야 하나...

 

암튼! 애들 낳고 나서 진짜 개 빡세 긴 한데, 희한하게도 손해 봤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.

 

정리도 안되고 주저리주저리 쓴 글이지만,

어느 누군가가 좋은 결정을 하는데 참고가 된다면 참 뿌듯하겠구만ㅎ

 

아.... 엄청 늦었네. 내일 또 출근인데 ㅜ-ㅜ

자고 내일 봅시다!